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손녀가 황당하기 그지없는 항변을 하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이유인즉 "왜 매일 임서현이라고 똑같이 불려져야 하느냐"며 이름을 바꿔 달라는 것이다.

순간 장난기가 발동하여 그 마음에 편승해 보기로 했다. 

원하는 이름을 말해 보라 하니 제 생각보다 할미에게 더 좋은 것이 있으리라 생각 되었던지 내게 말해 보란다. 생각나는 대로 “꽃님이, 이슬이, 달님이?” 온갖 예쁜 이름을 나열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아니야"로 일관한다.

이미 다른 아이의 이름이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단다. 결국 이름을 바꾸는 일은 수포로 돌아갔다.

6년 전 할아버지 대열에 합류할 날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남편은 첫 손녀인데 이름을 쉽게 지으면 안 된다며 수소문 끝에 유명한 작명소를 찾아냈다. 한걸음에 달려가 지어온 이름은 서현(抒泫), 당길 抒에 물 깊을 泫이다.

서현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 재벌의 딸과 같기 때문에 평생을 부귀영화를 누릴 이름이라고 흡족해 했다.

지금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후일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면 지금의 철없는 손녀는 어떤 반응을 할까.
성순(成順), 이룰 成 순할 順자를 평생 동반하고 살아온 내 이름을 떠올려 본다.

스물다섯 나이에 당시 결혼 적령기라는 사회의 압박에 못 이겨 맞선을 통해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생면부지의 땅에 둥지를 틀고 누구의 아내와 어미로 살아온 사십 년을 되돌아본다. 된서리에 가슴이 얼어붙는 시련도 있었고 때로는 서러움이 복받칠 때 소슬바람에 마음을 얹어 정처 없는 여행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고사리 같은 새끼들의 손에 입맞춤하는 것으로 치료를 받고 꿋꿋하게 지키고 가꿔온 세월이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된다.

특별히 드러내 놓고 자랑할 만한 삶을 살아 내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장성한 두 아들이 우리 내외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고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손녀의 재롱에 즐거운 노후를 보낼 수 있어 감사 할 뿐이다.

손녀딸을 보기 위해 주중에는 용인 아들네서 생활하고, 주말이 되어서야 진천 집에 내려와 잠깐씩 내 시간을 갖는다. 진천과 용인을 오가며 바쁘게 보내다보니 어느새 한해가 훌쩍 지나고 새해를 맞게 되었다.

정유년 새해 첫날, 찬란히 떠오르는 해를 맞고 싶어 백곡호 둑방에 올라섰다. 결국 해는 보지 못했지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큰 파동 없는 평온한 삶을 이어온 것이 ‘평생 순하게 목표를 이루고 살라’는 부모님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진 이름 때문이라 생각되어 오늘따라 고마운 마음이 든다.

행복의 기준을 생각해 본다. 이해하고 품어주고 함께 어우러져 웃을 수 있는 가족과 지인들이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지 않게 순응하고 마음에 빗장을 열어 주위를 돌아보고 정을 나누며 살아가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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