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올라오는 소리에 눈치 빠른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현관문 앞으로 다가 선다. 그 뒤에 나머지 두 마리도 짖기 시작한다.

현관이 열리자 세 마리 모두 꼬리를 엉덩이까지 흔들고 컹컹거리며 들어오는 딸아이를 반겨준다. “우리 강아지들 보러 내려온다”

학교 다니느라 서울에 있던 큰아이가 주말에 집에 들어오면서 하는 말이다. 강아지들은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더 열렬이 환영인사를 해 주는 것 같다.

우리 집에는 강아지가 세 마리 있다. 한 마리는 5년 전 지인으로부터 분양을 받은 녀석이고, 그 중 두 마리는 큰 아이가 대학교에 가면서 집을 떠나갈 무렵 낳은 강아지다.

암컷은 누런빛을 띠어서 ‘호두’라 이름 짓고, 수컷은 우리 집에 행운을 가져다 달라는 의미에서 ‘로또’ 라 부른다.

어쩌다 한 번 보는 딸을 주인 대접 안 해 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 이 녀석들은 큰아이를 제 집 식구로 기억하는 것 같다.

로또는 유독 남편의 눈치를 본다. 아주 어린 강아지일 때였다. 남편이 약간의 반주를 하고 온 날, 아무데나 오줌을 싸 놓았다고 혼쭐을 낸 적이 있다.

그 뒤부터는 남편이 알코올 냄새를 풍기며 집에 들어올 때면 잠시만 반겨 줄 뿐 슬금슬금 자기 집으로 피한다.

좋아하는 간식으로 유혹을 해도 집에서 나오질 않는다. 강아지도 어릴 적 좋지 않은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런 반면 호두는 태어날 때부터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라 할 정도로 대소변 가리는 걸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제 앞가림을 잘한다.

더구나 식구 네 명에게 번갈아 가며 꼬리를 흔들고 뽀뽀하며 안아달라고 아양을 떤다.

출근할 때 입는 옷인지, 산책용 옷인지도 구분하는 것 같다. 출근용 옷을 입으면 가볍게 주인의 주위를 맴도는데 산책용 옷을 입으면 신발장 앞에 걸린 리드줄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주인보다 먼저 나선다.

어미 개 ‘봄’이는 강아지 두 마리가 내 옆에 있으면 제 새끼인 것을 아는 것인지 내 근처에 오다가도 슬그머니 다른 곳으로 가 버린다.

제 딴에는 어미라서 양보하는 것 같다. “봄아, 이리와” 손짓을 하여 부르면 그제야 꼬리를 엉덩이까지 흔들며 몸을 반쯤 S자로 꼬면서 나에게 온다. 난 그제야 새끼들을 살짝 밀치고 어미가 오는 길을 터준다.

내 품에 와서는 아기가 엄마에게 안기듯 푹 휘감아 안긴다. 이렇듯 짐승들도 성격이나 행동이 제각각 다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끄으응 끄으응’ 거리면 어린 아기 대하듯 “왜에?” “으응!” “누가 그랬어?”정도로 대꾸해 줄 뿐, 그들의 언어를 들을 수 없으니 사랑하지만 소통이 덜 되고 있는 것이다.

강아지 언어번역기라는 것이 생겼으면 좋겠다.  나는 이 친구들에게 무엇을 해 주었을까? 요 녀석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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