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구석마다 봄이 내려앉는 소리다. 새봄이 찾아왔다. 잦은 바람 때문에 나는 봄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봄이란 단어만 들으면 가슴이 설레 인다. 향기로 말을 걸어오는 수많은 꽃들과의 만남도 기대되고, 식탁에 오르는 봄 내음 가득한 나물들도 나를 유혹한다.

집 먼지를 훌훌 털어버려야 할 것 같은 화창하고 나른한 봄날에 집 안 가득 쑥 향기가 그윽하다.

쑥국을 끓이며, 신혼의 봄을 보냈던 경남 마산에서 처음 쑥국을 맛보고 그 곳에서 새롭게 접했던 음식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넓은 들판 언덕위에서 새댁들이 봄볕을 맞으며 여린 쑥을 뜯느라 분주하다. 자줏빛으로 물오른 밑동을 살짝 잘라 바구니를 채운다. 쑥을 뜯어 남편에게 국을 끓여 선보이겠다고 들로 나온 것이다.

향이 독한 쑥으로 국을 끓여 먹는 것은 상상을 못 했었다. 쑥은 떡이나 해먹고 여름밤에 모기 쫓는 불로 쓰이는 줄로만 생각했었다.

이곳에 와서 처음 먹어본 쑥국은 내게 새로운 맛을 선사했다. 친정에서는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쑥국이었다.

쑥국은 쑥을 많이 넣거나 재탕을 하면 약간 쓴맛이 돈다. 된장 풀은 물이 바글바글 끓을 때 콩가루로 옷을 입힌 쑥을 한 줌씩 적당히 집어넣고 오래 끓이지 않고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가 있다.

뜯어온 쑥으로 국을 끓이니 된장과 어우러진 봄 향기가 냄비 뚜껑사이로 넘쳐난다. 남편은 쑥 향이 독하다고 싫어했지만 고소하고 향긋한 맛은 내 입맛을 사로잡았다.

어린 쑥은 국을 끓여 먹고 무성하게 자란 커다란 쑥은 가운데 연한 부분만 뚝뚝 끊어 삶아 쑥 개떡이나 쑥버무리를 해 먹는다.

어둑한 색깔의 쑥 개떡은 이름만큼이나 보기 싫어서 기겁을 하고 먹지 못 했던 먼 기억도 있다.

너무도 낯선 곳에서의 신혼생활은 친정집에서 즐겨 먹었던 음식들을 그리며 살아야 했다. 까끌 거리는 콩잎 장아찌와 젓갈을 잔뜩 넣은 밑반찬들. 고춧가루도 넣지 않고 끓인 허연 콩나물국, 이웃들이 전해주는 음식들이 입에 맞지 않아 그대로 버린 적도 많았다.

아귀찜과 미더덕 찜으로 유명한 곳이라 시장에 가면 머리 없이 세어빠진 하얀 콩나물이 산더미처럼 시루에 쌓여있어 놀라기도 했다.

보통은 콩나물 꼬리를 떼어 고추 가루 넣고 국을 끓이는데 이곳에서는 콩나물 머리를 떼서 음식을 했다.

지역특성상 해산물 종류가 많은 어시장을 남편은 자주 데리고 다녔다. 보도못 한 생선회와 꼼장어 구이, 피조개를 사 먹이는 남편이 그때는 밉기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좋아 하는 음식이 되어 버렸다.

한때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은 했지만 자꾸 먹다 보니 어느덧 사람들의 입맛을 따라가게 되었다.

진천으로 이사 와서 어깨너머로 배운 음식을 특별 요리라며 선을 보이며 찬사를 받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세상엔 못 먹는 것이 없고 몸에 좋다면 다 먹는 세상이 되었다.

봄맞이 쑥국을 끓이며 먼 옛날 풋풋했던 새댁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며칠 후면 결혼 33년을 맞는다. 결혼생활의 시작이었던 마산에서는 삼년의 짧은 기간 동안 머물렀지만, 늘 가슴속 깊은 곳에서 그리움이 샘솟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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