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동네는 15가구가 전부였다.

농사일로 늘 바쁘셨던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보살필 여유가 없으셨다. 아침을 먹으면 부모님은 밭으로 가시고 우리들은 약속이나 한 듯 동네 한가운데로 모여들었다.

취학 전이다 보니 배고픔만 해결이 되면 하루 종일 놀 수 있었다. 들과 산, 개울가 모두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한날은 친구가 피리를 만들어준다며 우리를 개울가로 데리고 갔다. 친구는 너무도 익숙한 손놀림으로 버드나무 가지 하나를 뚝 잘라서는 양손으로 비틀더니 보라는 듯이 쭉 뽑았다.

나무껍질은 물기가 살짝 겉도는 나뭇가지와 분리되어 떨어져 나왔다.

친구는 나뭇가지를 버리고 벗겨낸 껍질만 들고는 칼로 10cm 가량의 길이로 자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무리로 입술이 닫는 부위를 칼로 살짝 긁어냈다.

드디어 버드피리가 완성되었다며 우리에게 하나씩 나눠주면서 불어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버들피리는 우리들의 새로운 놀잇감이 되었다.

먼저 친구가 불었는데 신기하게도 “삐삐 빅” 소리가 났다. 급한 마음에 나도 따라 불었는데 나는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친구처럼 잘 부르고 싶은 마음에 두 볼이 터져라 온 힘을 주어 불어 댔지만, 어쩌다 “빽” 소리가 한번 날뿐 그만이었다. 이것도 기술이 있나보다.

알고 보니 버들피리는 힘을 빼고 바람을 살살 불어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무껍질 속살을 일정한 속도로 만져주듯 가만가만 불어야 소리가 나는 것임을 뒤늦게 알았다,

그런 것을 모르고 그때는 친구처럼 빨리 잘 불고 싶은 마음에 있는 힘을 주어 냅다 불어버리니 순식간에 구멍으로 바람이 빠져나가 소리가 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두 볼이 빵빵해지도록 바람을 넣고, 입술이 아프도록 불어대도 소리가 나지 않아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 친구는 삼촌한테 방법을 배워서 많은 연습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 버드나무 피리를 생각하면 살짝 웃음이 번진다. 요즘은 워낙 악기가 좋고 부는 방법이 잘 설명되어 있어 살짝만 연습하여 불어도 소리가 잘나지만, 그때는 대책 없이 덤볐다.

아무리 힘을 주고 몇 날을 연습해도 잘 안 불어지는 피리가 어찌나 야속하고 애를 태웠던지…. 많은 연습 끝에 가늘게 새어나오는 피리소리는 어린마음에 큰 기쁨이 되었던 것 같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 ‘힘 빼기’ 이다. 배드민턴 레슨을 받을 때도 코치님은 “힘 빼세요.” 한다. 너무도 잘 치고 싶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힘이 잔뜩 들어갔나 보다.

노래를 부를 때도 높은 음에서는 여지없이 “삑” 소리가 난다. 음 조절을 제대로 못한 탓이다. 자식을 키울 때도 마찬가지이다.

잘 키우고 싶은 욕심에 자꾸 잔소리가 는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잘하고 싶고, 잘 살고 싶다는 강박증이 생긴 것이다.

티눈처럼 박혀버린 이 욕심들….이제 와서 힘을 뺀다는 것이 너무도 어렵다.

그동안 있는 힘껏 내지른 이 욕심들을 어떻게 내려놓으란 말인가. 까마득히 잊고 있던 버드나무를 보며 내 어릴 적 버들피리 하나로도 만족하며 즐겁게 놀았던 그 시절로 나를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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