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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마저···여성 아이돌에 잔인한 한국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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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25  11: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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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하라
그룹 'f(x)' 출신 배우 설리(25·최진리)에 이어 그룹 '카라' 출신 구하라(28)도 세상을 떠나자, 아이돌 소비문화 행태를 바뀌어야 한다는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아이돌을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아이돌이 힘들어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K팝 한류가 세계를 휩쓸면서 주축이 된 아이돌의 긍정적인 측면이 부각돼 왔다. 하지만 이미지가 끊임없이 소비되며 물리적, 정신적인 상황이 코너로 몰린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근에 심리적 문제를 호소하는 아이돌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그룹 '세븐틴' 리더 에스쿱스는 심리적 불안 증세로 최근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특히 여성 아이돌에 대한 이미지가 과도하게 희생되거나 왜곡돼 왔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설리와 함께 구하라가 단적인 예다. 구하라는 전 남자친구 최종범 씨와 법적 공방, 네티즌과 성형수술 설전 등 갖은 고통에 시달렸다.

특히 최씨와 공방을 벌이면서 여성 연예인으로서는 공개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꺼내놓아야 했다. 최씨를 상대로 협박, 강요, 성폭력 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시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당시 사회적으로 '리벤지 포르노'가 이슈가 되기도 했다.

법원은 지난 8월 최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리벤지 포르노와 관련해서는 무죄 판단을 받았다. 구하라 측은 양형 부당으로 항소, 2심이 예정됐다.

설리가 지난달 사망한 이후 크게 논란이 됐던 악플은 구하라도 괴롭혔다. 그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악플로 인한 고통을 수차례 호소했다. '힘들어도 안 힘든 척, 아파도 안 아픈 척' '한마디의 말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등을 적었다.

부끄럽지만 언론들도 큰 잘못이다. 구하라가 찍어 올린 사진, 남긴 글 등을 자극적으로 편집 또는 왜곡해 인터넷에 뿌렸다.

연예매체뿐만 아닌 메이저 언론들도 온라인 판 등을 통해 클릭 수를 위해, 자극적으로 구하라를 소비했다. 아이돌은 악플과 자극적인 기사를 감수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상식에 암묵적으로 상당수가 동의했다.

◇여성 아이돌에게 유독 잔인한 한국사회

대중은 아이돌에게 사랑을 보내는 만큼 때로는 가혹한 시선을 보냈다. 특히 여성 아이돌에게 유독 정도가 심하다. 조금만 실수를 해도, 비판을 넘어 비난을 가한다. 맥락과 상관없이 특정 부분을 확대해석해 폭격한다.

이로 인해 구하라, 설리 뿐 아니라 다른 여성 아이돌들은 숨죽여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여성 아이돌은 이해 못할 상황에 계속 처했다.

그룹 '레드벨벳' 멤버 아이린은 작가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과도한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레드벨벳의 일부 팬들은 그녀에게 실망했다며 아이린 굿즈를 훼손한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그룹 '에이핑크' 손나은은 휴대전화 케이스에 적힌 문구 '걸스 캔 두 애니싱(Girls can do anything)' 때문에 이유 없는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여성은 뭐든 할 수 있다'는 뜻의 이 문구가 페미니즘을 연상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친 이들의 도 넘는 행위였다.

가요계에서는 일부지만 이런 네티즌들의 태도는 아이돌을 무성(無性)의 상품화 취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아이돌을 매니지먼트하는 중견 기획사 관계자는 "아이린, 손나은에 대한 일부 네티즌들의 행동은 황당할 정도로 비상식적이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우려스런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아이돌이 작은 사안에도 자신의 의견을 내지 못하고, 기계적인 답변만 하게 만들 수 있다. 작은 논란도 피하고 싶은 소속사에서도 이를 요구할 수 있다. 아이돌에게 정치적 올바름은 필요하다. 하지만, 정치적인 입장을 낼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아이돌 문화, 자성하며 돌아봐야

이런 상황에서 여성 아이돌은 자유를 누리는 대신 끊임없이 자기 검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데뷔 21년차 그룹 '신화' 멤버 김동완은 지난달 설리를 애도하며 이런 점을 지적했다.

그는 "더 많은 매체들과 더 많은 연예인들이 생겨나며 서로에게 강요받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 어린 친구들이 제대로 먹지도, 편히 자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건강하고 밝은 미소를 보여주길 바라는 어른들이 넘쳐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많은 후배들이 돈과 이름이 주는 달콤함을 위해 얼마만큼의 마음의 병을 갖고 일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최근 이런 일련의 상황에 따라 뒤늦게나마 아이돌 소비문화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한류가 급부상하며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정부까지 앞장서 K팝 문화 부흥과 알리기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그 주인공들의 내면을 톺아보다는 데는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아이돌이 한류 간판이 되면서 인성 교육 등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각자 심리 상태를 파악하지 않은 규칙 강요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중견 기획사 관계자는 "한류의 이미지가 중요해지면서 조금이나마 튀거나 기존 아이돌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들을 무조건 억누르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면서 "각자 개성을 존중해야 좀 더 건강한 아이돌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겠냐"고 했다.

인성 교육 못지않게 다양성 존중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빠른 속도와 역동성을 자랑하는 한국 사회는 한번 바람을 타면, 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몰아붙인다.

한류도 마찬가지다. 구하라와 설리처럼 개성 강한 아이돌은 튀는 아이돌로 치부해왔다. 걸그룹에게는 '예쁜 이미지로 소비되기'만을 암묵적으로 요구해왔다.

K팝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지만 페달을 밟기보다 한번쯤은 브레이크를 밟고 돌아봐야 하지 않겠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아이돌 업계를 20여년간 지켜봐온 관계자는 "K팝 아이돌이 규모적인 측면에서 무섭게 성장해왔지만 안에는 여러 부분이 곪아있다"면서 "'산업을 더 키운다'는 미명 아래 업계와 사회, 미디어 등이 암묵적으로 모른 척 해온 어두운 부분이 있다. 앞날을 위해서라도 그 부분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대책이 지금 필요하다"고 짚었다.

대한가수협회는 설리의 비극적 사태 이후 건강하고 안정된 가수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활동에 돌입했다. 가수들을 상대로 한 무분별한 (댓글을 방치하는) 포털사이트에 대해 보이콧을 선언하는 등 전방위적 활동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협회 내에 정신건강 상담 및 피해 신고 센터를 개설하고 교육의 장을 마련하는 등 협회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계획도 알렸다.

◇연예인들도 감정노동자

각박한 한국 사회에서도 더 치열하게 감정을 소비하는 연예인들의 심리적인 상황은 극단을 오간다. 우울증이 극심해지는 것이다. 중견 아이돌 기획사 관계자는 "연예인은 감정 노동자다. 감정 소진이 심한 직업"이라고 했다.

특히 바쁜 스케줄에 좇기고 대중에게 항상 노출되는 아이돌은 감정 소진을 충전할 기회가 적다. 바쁘다보니까 고립되는 구씨는 숨지기 전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잘 자”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긴경우도 잦다.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연예인들에게 가하는 대중의 폭력성도 연예인들을 고립시키는데 한몫한다. 특히 인터넷에서 집단으로 연예인들을 매도하는 한국에서 그러한 경향이 짙다.

미국의 연예 미디어 버라이어티는 과거 아이돌 멤버의 사망 소식을 다루며 "한국의 연예인들은 악명 높은 중압감에 시달린다. 터무니없는 수준의 행동 규범을 요구받고 소셜미디어 댓글 등을 통해 거센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중견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연예인들이 심리적 고통을 털어놓을 수 있는 전문가와 만남 등을 주기적으로 만들고 싶지만, 바쁜 스케줄 탓에 무리"라고 했다.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는 자체를 꺼려하는 연예인들도 상당수다. 상담을 받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라는 걸 인식시키려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5월 극단적 시도를 해 주변의 우려를 샀던 구하라는 6월 자신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우울증 쉽지 않은 거다. 마음이 편해서 우울증이라고? 열심히 일한 만큼 얻은 저의 노력이다. 당신도 우울증일 수도 있다라는 걸, 아픈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구하라는 설리과 세상을 떠난 직후 그녀에게 보내는 영상에서 "너 대신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구하라는 살고자 했고 이전까지 끊임없이 아프다는 신호를 보냈다. 누군가는 그 신호를 알지만 받아들이지 않았고, 또 누군가는 모른 척 했다. 구하라는 지난 23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잘 자"라고 적었다.

중견 아이돌 기획사 관계자는 "아이돌은 화려해보이지만 우리랑 똑같이 아프다. 아이돌 자체가 직업인 된 시대에 우리처럼 똑같이 힘들어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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