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2년 전 역사의 가야 수수께끼 국원 능안 呈加耶之舞

▲ 이소정 국립무용단 단원
-12현 가야금과 노래에 맞춰 검무로 국원 가야무 빚어내-

삼국사기에 의하면 668년 25일, 임금이 귀국하던 길에 욕돌역(褥突驛)에 머물렀는데, 국원(國原·지금의 충주)의 사신(仕臣·지금의 충주시장) 대아찬 용장이 잔치를 열어 임금과 시종하는 사람들을 대접하였다. 음악이 시작되자 15살 소년 능안(能晏)이 가야의 춤을 추었다. 임금이 그 용모가 단정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는 금술잔으로 술을 권하고 폐백(幣帛)을 후하게 주었다.“고 전한다.

원문(二十五日 王還國 次褥突驛 國原仕臣龍長大阿飡 私設筵 饗王及諸侍從 及樂作 奈麻緊周子能晏 年十五歲 呈加耶之舞 王見容儀端麗 召前撫背 以金盞勸酒 賜幣帛頗厚)

이 기록을 토대로 국립무용단의 이소정 단원이 가야의 수수께끼를 춤으로 풀고자 우리나라 고서중 춤이 최초로 표기된 국원 가야무를 창작 복원하는, 예술적 존중의 의미가 더한 공연을 11일 오후 2시 충주 탄금호 일원 우륵아트센터에서 시도한다.

가야무는 1천 3백여년 전 가야인 들이 즐겼다는 기록으로만 전한다. 원형이 전승 되지 않아 여러 춤꾼들이 복원하려는 움직임은 있었던 것 같으나 본래의 모습인지는 추정할 뿐이다.

‘가야무’가 역사 기록에 등장한 것은 7세기 후반 신라 문무왕대이다. 고구려 평양성을 정복하고 서라벌로 환궁하던 문무왕이 국원 욕돌역에서 하루를 유숙하게 된다. 이때 국원태수는 잔치를 베풀고 무동(舞童)이 춤을 춘다.

이 주인공은 15세 소년 능안(能晏)으로 당시 화랑으로 추정된다. 당시 충주에는 가야 사람들이 많이 이주하여 살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가야금을 중흥 시킨 우륵과 악인(樂人)들의 후손들 이다. 문무왕은 감동하여 손수 능안에게 금잔에 술을 따라주고 푸짐한 보물까지 하사한다.

이보다 1백여 년 전 악성 우륵은 진흥왕의 비호아래 중원경에서 국악을 진흥시킨다. 우륵은 탄금대 일원에서 제자인 계고·법지·만덕에게 가야금·노래·춤 악가무를 전수한다. 그리고 하가라도(下加羅都) 상가라도(上加羅都) 보기(寶伎) 달기(達己) 사물(思勿) 물혜(勿慧) 등 12곡을 완성한다.

그 시기 능안이 춤을 추었을 때 반주는 무엇으로 했을까? 우륵의 가야금 이였을까? 고사에는 “신라음악은 고(琴)와 춤(舞)과 노래(歌)로 편성되었다”고 전한다. 일본고사에도 신라음악은 '고'와 ‘춤’만이 나타난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년 화랑은 가야금의 아름다운 선율과 노래에 맞춰 검무로 춤을 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이소정 단원은 이러한 고서의 고증에 의거 국내 오대축제로 불린 제 50회 우륵문화제의 성공기원을 담아 가야금병창 이선 연주자의 가야금과 노래에 맞춰 춤사위를 더해 전통의 깊이로 우륵이 거닐던 탄금호 일원서 잊지 못할 색다른 감성을 빚어낼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 단원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술사 및 전문사 졸업,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공연예술학과 무용학 박사 졸업의 학력과 국립무용단 단원 및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교양학부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양성과 창작안무 및 춤꾼으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 이번 작품에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2015 세계리듬체초 올스타초청 갈라쇼 1부연출, 국립극장 기획공연 <봄의여신>안무및 출연, 울산광역시 승격20주년 기념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안무, 국립오페라단 창작 팩토리 사업 「천년의 사랑」 안무등을 통해 관객을 신명에 도취시키는 매력과 무향, 가지꽃등 개인 창작 춤도 여러 편 선보이는 등 무용수로서나 안무가로서 대내외적으로 서서히 대표주자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이날 삼국유사 영인본을 간행한 상인스님(조게종 가섭사 주지)과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정성숙 이사장등도 참석해 국원의 가야무 창작복원과 제 50회 우륵문화제 성공기원 평화우륵음악회가 함께 꾸며진 드라마틱한 특별한 무대를 감상하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한국무용과 국악에 대한 편견에 유쾌하게 일침을 놓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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