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출신 지역구 의원 처음 나와… 탈북민 자존감↑

▲제21대 국회의원선거 강남구갑 태구민(태영호) 미래통합당 당선자가 16일 새벽 서울 강남구 선거사무소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4·15 총선에 출마한 태구민 미래통합당 당선자가 탈북한 지 4년여 만에 보수 텃밭 서울 강남구갑 국회의원이 되면서 향후 행보에 이목이 집중된다.

북한 연구자들은 태 후보 당선이 탈북민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탈북민 가운데 지역구 국회의원이 된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태 당선자는 이번 총선에서 6만324표(58.4%)를 획득, 김성곤 더불어민주당 후보(4만935표, 39.6%)와 2만표 가량 격차를 벌리며 금배지를 거머쥐게 됐다.

지역구 의원은 비례대표 의원과 달리 인물에 영향을 받는다. 태 후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컸다면 강남갑이 아무리 전통적 보수당 강세 지역이라도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태 후보 당선이 19대 국회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뽑혔던 조명철 전 의원과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태 당선자는 기대와 함께 우려의 시선도 받고 있다. 특히 향후 의정 활동이 탈북민 처우 개선보다는 문재인 정권을 향한 야당의 안보 공세에만 집중되는 게 아니냐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태 당선자는 2018년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미지가 미화됐다고 비판하며 북한 권력층의 실상을 폭로한 바 있다. 또 개인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최신 북한 소식의 이면에 대한 논평과 전망을 활발하게 내놓기도 했다. 보수 진영은 북한 관료 출신으로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태 당선자의 발언에 귀를 기울였지만 진실성 검증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통일부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통일부의 각급 당국자들은 태 당선자가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에 입당할 때부터 출마 여부, 당선 가능성 등을 예의주시하는 기류를 보였다.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통일부 입장에서는 태 당선자의 한국 내 정치적 위상 강화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북한의 반응을 신경쓸 수밖에 없는 처지다.

북한 선전매체는 지난 2월 태 후보를 공천한 미래통합당을 향해 "인간쓰레기를 북남 대결의 돌격대로 내몰려는 것은 민족의 통일 지향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도전"이라고 날을 세운 바 있다. 북한 당국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선전매체를 통해 태 후보를 둘러싼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한 외교안보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뉴시스와 통화에서 "태 당선자가 그간 북한 지도부의 남북 협력 진정성을 의심하는 얘기를 많이 해왔다"며 "남북 교류·협력을 도모하는 통일부 입장에서는 태 후보 당선이 껄끄러운 게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제2의 태구민'을 꿈꾸는 탈북 인사들이 늘어날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선도 나타났다. 통일부 전직 관료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조명철 전 의원이 당선됐을 때부터 '그 다음은 나'라고 공공연하게 얘기하고 다니는 탈북 인사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탈북민도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서 피선거권을 갖는 데 있어 차별받아서는 안 되지만 탈북민 사회가 지나치게 정치세력화에만 몰두하는 현상을 경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탈북민 정당(남북통일당)이 창당되기도 했는데 앞으로도 탈북민의 정치권 진출 움직임이 활발해질 수 있다.

통일부는 이번 총선에서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 2명이 나온 것과 관련,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다양성을 더 풍부하게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태 당선자와 함께 21대 국회에 입성한 북한 인권단체 나우(NAUH)의 대표 지성호씨는 미래한국당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한편 탈북민은 이번 총선을 통해 그 어떤 소수자보다도 금배지를 많이 배출한 집단이 됐다.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탈북민은 3만3523명으로 이들 가운데 2명의 국회의원이 배출됐다. 1명당 1만6000여명을 대표하는 격이다.

그동안 소외됐던 탈북민 인권 관련 논의가 본격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보수 야당은 지난해 탈북민 모자 사망, 북한 어민 송환 사건 당시 인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미래통합당은 이번 총선 과정에서 북한이탈주민강제송환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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