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공수처장, 여야 합의 추천을" 법개정 우려

▲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김종철 대표 체제 출범 후 정의당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강화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에는 찬성하면서도 민주당의 일방 독주에는 우려를 표했다. 당론 법안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낙태죄 폐지,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 진보 이슈를 선도하는 데서 나아가, 여당의 역점 사업인 가덕 신공항에는 '표(票)퓰리즘'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거침없이 비판하고 있다. 옛 민주노동당에 버금가는 '진보 야성(野性)'을 회복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대표는 26일 상무위 회의에서 "어렵겠지만 공수처장 추천이 여야의 합의로 다시금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며 "최종적으로 합의가 무산되어 정부여당이 공수처법 개정을 추진하는 상황에 돌입하더라도 그 내용은 공수처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개정안이 논의되더라도 그러한 방향이 담보되지 않으면 정부여당이 사실상 지명권을 가진 공수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는 여당이 공수처법 개정을 통해 공수처창 후보 추천위원회 의결 정족수를 현행 7명 중 6명에서 3분의 2로 낮추는 데 우려를 표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의당은 지난해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범여권 4+1 공조에 동참해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법 등 권력기관 개혁 입법에 손을 보탰다. 공수처 출범이란 대의에는 찬성하면서도 여야 합의라는 '원칙과 절차'를 지킬 것을 촉구한 것이다.

장혜영 원내수석부대표도 전날 의원총회에서 공수처법 개정 추진에 대해 "명분도 실리도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법 개정을 통해 야당의 비토권을 힘으로 무력화하고 출범하는 공수처가 어떤 권위와 신뢰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공수처가 권력투쟁의 도구라는 오명을 갖게 된다면 그건 공수처를 아니 만드는 것보다 못하다"고 주장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정지 후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기 윤 총장과 추 장관 국정조사를 주장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데 대해 양측을 싸잡아 비판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이낙연 대표, 주호영 원내대표, 이제 그만하자. 대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받고 낙태죄 폐지까지 더블로 가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지긋지긋한 '권력투쟁'에 우리의 일상은 없다"며 "매일같이 끼어 죽고, 깔려 죽고, 떨어져 죽어 나가는 노동자의 목숨, '중대재해 문제의 해결'이 우리의 문제이고, 낙태를 결정해야만 하는 여성의 불안함이 오늘 우리의 고민거리"라고 일갈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1인 시위는 이날로 81일째를 맞았다. 강은미 원내대표는 광화문 광장에 나와 "민주당은 다양한 핑계로 당론을 채택하지 않으면서 올해 회기 내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하기 곤란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며 "대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포괄적 차별 금지법 제정에도 전력투구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운동본부(본부장 장혜영, 배복주)는 이번 정기국회 회기 종료일과 맞물리는 내달 10일 '세계 인권 선언의날'을 차별금지법 제정 목표일로 삼고 ▲종교계 릴레이 지지선언 ▲주한 대사관 연속 대담 ▲시도당 기자회견 및 선전전 ▲온라인 당원의 날 ▲SNS 행동 등 총력 집중운동에 들어갔다.

가덕 신공항 드라이브에 대해선 김 대표가 지난 19일 "도대체 '묻지마 4대강'과 '묻지마 가덕도'에 무슨 차이가 있다는 것인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지난 24일 이낙연 대표가 가덕 신공항 특별법과 더불어 대구·광주 신공항 특별법의 협의 처리를 주장하자 "이쯤하면 공항 ‘표’퓰리즘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며 "잇따른 신공항 특별법은 아무리 살펴봐도 백년지대계가 아닌 선거지대계로 보여진다"고 했다.

정의당의 '선명 진보' 행보는 지난 21대 총선 당시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의 실패 경험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의 권력기관 개혁에 보조를 맞추며 선거제도 개편을 관철했지만 정작 총선에선 거대 양당의 '비례대표 위성정당'에 치여야 했다. 민주당마저 야당의 위성정당에 대응한다며 '연합정당'을 꾸리면서 정의당으로선 뒤통수를 맞은 상황이 됐다. 의석수 대거 약진을 기대했지만 비례대표 6석에 그쳤다.

원내 의석 확보를 위해 민주당과 공조했던 정의당은 김종철 대표의 6기 지도부 수립 후 대폭 전략 수정에 나섰다. '선명한 진보정당'을 표방하며 거대 양당, 특히 민주당이 보수적 행보를 취할 때 '더불어국민의힘'이라고 서슴없이 규정하고 있다.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관련해선, 이번 선거가 전임 박원순·오거돈 시장의 '권력형 성범죄'로 야기된 것임을 분명히 하며 독자 완주 방침을 세웠다.

김종철 대표는 지난 23일 재보선 기획단 회의에서 "내년 4월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성평등 선거', '반성폭력 선거'의 원칙 아래 치르겠다"면서 "정의당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우리 앞에 놓인 3대 위기를 극복하는 선거로 규정한다. 3대 위기는 성폭력 위기, 주거위기, 기후위기"라며 "이 3대 위기로부터 안전한 서울, 부산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2022년 대선과 연이어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지방의회 약진도 노리고 있으나, 이를 위해선 공직선거법 개정이 필수적이다. 선거법상 중선거구인 지방의원 선거구는 2~4인 이내로 시·도 조례로 정하도록 돼있어, 지난 2018년 지방선거의 경우 거대 양당이 다수인 시·도 의회에서 3~4인 선거구를 대거 2인 선거구로 통·폐합하며 소수정당의 지방의회 진출 장벽이 높아졌었다.

지난 20대 국회에선 심상정 의원이 구·시·군의원 선거구 의원 정수를 3~5인으로 높여 2인 선거구 '짬짜미' 조례 제정을 막고, 기초의원 비례대표를 30%로 늘리는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회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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