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소나무들은 모진 해풍을 이겨 내면서도 멋진 자태를 뽐내고 서 있다.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나무가 없다. 소나무 숲은 청량한 기운을 내뿜어 우리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듯하다. 해송들과 잘 어우러진 해변도로를 굽이굽이 돌아드니 동해의 푸른 바다가 넘실대며 반긴다.

청정한 바다를 대하고 서면, 무더위를 모두 날려 버릴 듯 마음까지 시원하다. 저 푸른 바다는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한다.

어느 때부턴가 계획 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곳저곳 구경하다 해질녘에 도착하는 곳이 그날 밤 숙소로 정해진다. 휴가나 행락 철을 살짝 빗겨 평일에 떠나면 많은 차량들과 부딪기지 않아 편리하다. 숙소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어 경제적이고, 현지에서 닥치는 스릴도 재미있다.

오늘은 경포대에서 하룻밤을 보낼 참이다.

숙소로 들어서니 푸른 바다와 빨간 등대가 한눈에 펼쳐지며 근사한 풍광을 연출한다. 창문을 열어젖히자 비릿한 바다 냄새가 파도에 밀려 방안 가득히 들어와 앉는다. 짐을 부려놓고 해변의 모래사장으로 내려갔다.

맨발로 걸으며 발을 비벼대니 발가락사이가 스멀스멀 간지럽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선선하기까지 했다.그 바람이 비를 몰고 오려나보다. 심술부리듯 뒤 쫒아오는 먹구름이 심상치 않다. 갑자기 먹구름과 함께 안개가 해변까지 휩싸이며 소낙비를 쏟기 시작했다.

안전요원의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에 해변에 있던 사람들이 뛰기 시작한다. 우리도 비를 피해 횟집으로 뛰어 들었다. 싱싱한 바다 회와 먹고 싶었던 오징어 물 회를 시켰다. 언젠가 아주 맛있게 먹었던 그 물 회의 맛은 아니었다. 남편과 아들은 즐거운 여행을 하자며 소주잔을 부딪친다.

비와 함께하는 여행은 더 낭만적이다. 한치 앞도 안보이게 내리던 폭우는 저녁을 다 먹을 때까지 쏟아졌다. 비가 그치자 젊은이들은 해안가로 나서고 지친 우리들은 숙소로 자리를 옮겨 한잠 휴식을 취했다.

슝~슝 팍팍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폭죽 터지는 소리와 동시에 불꽃은 어두운 해변을 수놓는다. 물 위에 서 있는 등대는 지칠 줄 모르며 반짝이고, 젊은이들의 폭죽도 쉴 새 없이 튕겨 오른다. 등대불은 젊은 친구들의 불꽃놀이에 동참하며 서로 내기를 하는 듯하다.

쓩이잉 요란한 소리로 올라가서 팡팡 경쾌하게 폭죽이 터지자 아름다운 별들이 쏟아져 내린다. 캄캄한 베란다에 홀로 나와 훔쳐보고 있는 나를 위한 작은 불꽃쇼 같았다.

한 여름 밤바다는 젊은이들의 축제의 밤이었다. 불꽃을 들고 빙빙 돌리며 원을 그리는 청춘들이 잠 못 이루고 열기를 토한다. 오늘은 이런 공해쯤은 눈감아 주며 즐거움을 준 것에 고맙기까지 하다. 우리도 불타는 젊은 날이 있었기에 ……

불꽃놀이에 분수없이 끼어 든 나는 밤잠을 그대로 설쳤다. 두 남자는 코를 골며 꿈나라를 여행 중인데 나의 눈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폭죽소리가 잦아든 새벽의 고요한 바다의 정취를 혼자 가만히 느껴본다. 파도 소리와 외로운 등대 불빛만이 깊어가는 밤바다를 지키고 있다.

등대 불빛은 3초마다 반짝 반짝 빛을 발하며 바닷길을 밝혔다. 불빛이 길게 꼬리를 흔들며 물결 속으로 잠겨든다. 등대는 아름다움과 낭만을 생각하게 한다.

한편, 모진 태풍과 비바람을 이겨내며 강인하면서도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과도 같다.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에 …’ 문득 등대지기 노랫말의 한 구절이 맴돈다. 나도 누군가에게 작은 불빛이 되는 삶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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