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무덥더니 비가 오락가락 한다. 오늘 같은 한여름 저녁은 된장찌개가 제격이다. 뚝배기에 된장을 풀고 호박이랑 두부를 도톰도톰 하게 썰어 넣은 다음 굵은 멸치 몇 마리 띄워 한소끔 끓인다.

그 위에 풋고추와 대파를 송송 썰어 얹고 한 번 더 보글보글 끓여 상에 올린다. 보리밥에 열무김치, 나물반찬 몇 가지를 곁들였다. 고추장을 약간 넣고 썩썩 비벼서 한 그릇 뚝딱 비운 남편은 당신이 해준 밥이 제일 맛있다며 한 술 더 뜬다. “된장찌개가 일품이야” 남편의 칭찬이 싫지 않다.

지난해 담근 된장이 잘 담아 진 것이다. 내가 먹어봐도 얼핏 어머님에게서 얻어다 먹던 된장 맛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내일은 장 담그는 날입니다’ 라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이듬해부터 당장 된장이랑 고추장. 청국장을 해 주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단체로 주문을 받아 장 담그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과 연계를 하여 장을 담그기 시작했다.

신청한 사람이 한날 다 모여 자기 것은 자기가 직접 담을 수 있도록 하는 체계이다.

먼저 개인 항아리를 배정받아 이름표를 붙이니 메주 몇 덩어리를 나누어준다. 그 다음은 소금물을 붓는다. 소금물의 농도는 날계란을 띄워서 500원 짜리 동전 크기만큼 보이면 된단다. 그 위에 숯 몇 덩어리와 고추랑 대추 몇 개를 넣으니 끝이란다. 생각보다는 쉬운 듯 한데 그래도 집집마다 장맛이 다르니 무슨 조화인지…….

작업을 마치고 주체 측에서 마련한 점심과 막걸리에 빈대떡까지 많은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또한 인절미도 직접 만들어 먹는 체험도 해 볼 수 있었다. 장 담그러 온 것이 아니라 소풍 나온 것 같았다.
얼마 후 다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장 가르기 하는 날이니 오라는 것이다.

지난번 소금물에 앉혀 놓았던 메주를 건져서 조물조물 주물러 다시 항아리에 꼭꼭 눌러 담아 숙성 시키면 된장이 되는 것이다. 소금물은 메주와 섞여서 검은 색으로 변했는데 이것이 간장이다.

전문가의 손을 빌리긴 했지만, 너무 쉽게 된장이랑 간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어머님이 안 계시니 이런 방법으로 길이 열리나 싶다. 세태가 변해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아무튼 이렇게 얻은 된장과 간장을 시누이와 시동생 그리고 친구까지 주고 나니 흐뭇하다. 어머님도 이런 행복감으로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나누어 주셨으리라 생각이 든다.

나야 다해 놓다시피 한 것 돈 들고 가서 쉽게 담가온 셈이지만. 어머님은 직접 농사를 지어 메주를 쑤고 말려서 장 담그기 까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온다. 콩 한 톨이라도 마당에 떨어져 있으면 주우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들깨, 참깨 농사지어 기름을 짜 놓고 혹시나 구별 못 할까봐 병마다 표시해서 자식 숫자대로 쭉 배열해 놓고 자식 오기를 기다렸던 어머님, 마늘 나올 때가 되면 마늘을, 김장때가 되면 고춧가루를, 청국장 먹을 때가 되면 청국장을 시시 때때 다 챙겨주셨다. 그런 것들을 가져다 먹으면서도 그 때는 귀 한 줄도 모르고 당연한 줄만 알았다.

어머님은 이렇게 자식들에 좋은 먹을거리를 나누어 주기 위해 정성을 다하셨는데 나도 자식들에게 그리 해 줄 수 있을까? 문득 된장찌개 한 그릇에 어머님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담아본다.

 

저작권자 © 매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