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였다. 텔레비전에서 기품이 물씬 풍기는 여인이 꽃차에 빠져 사는 모습을 보았다. 특히 칡꽃으로 만든 차의 향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예찬했다. 그 말이 마음에 꽂혔다.

어떤 향기일까? 나도 꼭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 정보를 찾아보니 꽃은 팔월에 핀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시기가 지난 뒤였다. ‘내년에 꼭 만들어 봐야지' 생각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는 동안 잊고 있다가 우연히 차창 밖의 풍경 속에서 칡넝쿨이 눈에 들어왔다.

‘아참, 칡꽃 차! 때가 되었지.’ 이번엔 놓치지 않으리라. 꽃을 딸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길가를 점령한 칡넝쿨만 보일뿐 마땅히 채취 할 곳이 없었다. 한번 마음에 꽂히니까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렇게 칡꽃앓이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남편이 나들이 삼아 제천 박달재를 가자고 했다.

길을 나섰다. 고개에 접어드니 더위에도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온다. 박달재 표지석 뒤쪽에 앉아 혹시 칡꽃이 있을까 살펴봤다.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여기도 사람들에게 점령당한 것 같아 씁쓸했다. 잠시 머무르다 그 곳을 빠져 나왔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제천의 산 중턱의 외진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상차림에 비해 비싸 눈살을 찌푸리며 나오는 길이었다. 향긋한 꽃내음에 이끌려 눈길을 돌렸다. 울창한 숲 사이로 고혹적인 보라색 꽃이 반짝 빛이 났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칡꽃이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꽃대가 긴 꼬리를 곧추세워 흔들고 있는 것 같다. 꽃은 마치 벌이 꿀을 빨기 위해 서로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형상으로 보인다.

꽃을 한 움큼 땄다. 차를 만들 생각에 한껏 신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구름 위를 날아가는 듯 가볍다. 오자마자 방송에서 봤던 기억대로 살짝 덖었다. 향이 진하다.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보다 더 잘해보려고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구증구포 한다고 한다. 얼른 증기에 쪘다.

과하면 탈이 난다고 했던가? 한 번도 차를 만들어 본 적이 없던 나는 15초 정도 증기로 쪄야 할 것을, 그 열배나 되는 시간을 그냥 놔 둔 것이다. 빛깔이 이상해졌다. 향은 다 날아가고 쩐 내만 난다. 잠이 안 왔다. 버리려니 아깝고 놔둬야 소용이 없어 한숨만 쉬었다. 그것을 본 남편이 다시 따러 가자며 나를 달랜다.

다음 날 남편과 딸을 앞세워 길을 나섰다. 어제보다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전날 비바람이 몰아쳐서인지 꽃이 많이 떨어졌다. 그래도 좋았다. 봉지를 벌려 얼른 훑어 넣었다.

집에 와서 냄새를 맡아보니 먼저 땄던 것 보다 향은 약하다. 비가 와서 그런지 기후가 달라서 인지는 모르겠다.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증기를 쐬어 그늘에 말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벌레가 말썽이다. 뜨거운 김을 쐬어도 살아서 꿈틀거리며 푸지게 똥까지 싸 놓았다. 이번에도 망쳐버렸다. 못 쓰게 된 꽃을 들락날락하며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남편은 주말에 처갓집에 가자며 나를 위로 한다.

아침에 서둘러 나섰다. 친정집에 도착하니 점심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남편이 칡꽃을 따러 가자고 한다. 그 말에 내 입가에 미소가 인다. 아버지 산소가 있는 양각산으로 향했다. 가물어선지 넝쿨은 늘비한데 꽃은 보이질 않는다. 뒤적뒤적 꽃을 찾아 땄지만 한 주먹 정도 밖에 안 된다. 이 정도라도 어딘가 싶어 기분이 좋아진 나는 얼른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오자마자 꽃잎을 한 겹 한 겹 펼쳐 살펴보기 시작했다. 세밀히 고른 후에 뜨거운 팬에 덖었다. 하얀 종이를 깔고 펼쳐 말리면서 혹시나 남아 있을 벌레를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드디어 완성이다. 마음이 통하는 수필교실의 그녀들에게 제일먼저 선보일 생각에 두근두근 떨렸다. ‘처음 맛본다.’ ‘향이 은은하다’며 다들 반응이 좋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얻기 위해 삼고초려를 했다면 나는 칡꽃 차를 얻기 위해 세 번이나 나들이를 하지 않았던가! 신기해하며 차향을 즐기는 그녀들을 보니 뿌듯하다. 그들에게 칡꽃 향이 나는 듯 했다.
 

저작권자 © 매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