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가뭄이 지속되고 있다. 힘에 겨운 농작물은 윤기 잃은 머리칼을 땅에 늘어뜨리고 오지 않은 비에게 원망의 시위라도 하는 듯 보인다.

길가의 가로수도 뿌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을 보니 소낙비가 간절히 기다려진다. 밤새 식지 않는 열기 때문에 뒤척이다 겨우 새벽녘에 잠이 들었다.

그런데 서늘함이 느껴져 눈을 비비고 일어나 열어 놓았던 창문을 닫으려다 보니 베란다 창살에 빗방울이 조롱조롱 맺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빗님이 오셨네" 하고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소리에 곤히 잠들어 있으리라 생각했던 여섯 살 손녀딸이 부스스 일어나 할머니 곁으로 다가와 앉는다.

"할머니, 빗방울이 인사를 해요. 그네를 타는 것 같아요." “빗방울아! 안녕?”하고 환하게 웃으며 쫑알댄다. 순간 내 동공이 두 배로 확장되고 입은 반쯤 벌어졌다.

‘요 조그마한 입에서 어찌 이리 깜찍한 말이 나올까?’

천사 같은 손녀딸의 감성에 새벽 공기가 더욱 상쾌하게 느껴진다. 그 아이가 첫돌 무렵이었다.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듣게 된 아리랑 가락에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었다.

아기가 뭘 안다고 눈물이 나오는지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짓궂게 아기 앞에서 턱을 괴고 수없이 아리랑은 불러대며 아이를 울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른들이야 ‘아리랑’ 하면 우리 민족의 한을 떠올릴 수 있지만 돌잡이 아기에게는 가당치 않은 일 아닌가. 할머니가 부르는 아리랑에 멋도 모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 감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선천적으로 감성이 뛰어난 유전자를 타고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때 가족 모두는 ‘신동이 우리 집에 태어났다’는 판단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었다.

요즈음 생각지도 않게 주말부부 생활을 한다. 손녀딸을 봐 주러 평일에는 용인 아들네 집에 가서 산다.

어느 날 손녀딸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러 가는 길이었다. 아이가 느닷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할머니, 저 솜사탕 참 맛있겠다" 한다. 얼른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에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 있었다.

순간 속없는 할미는 또 한 번 머리부터 발끝까지 흥분의 도가니가 되어버린다.

‘아무래도 우리 손녀딸은 남다른 무언가가 있는 게 틀림없어’ 얼마 전 일이다. 놀이터를 팔랑팔랑 뛰어다니다 가만히 앉아 노란 꽃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할머니를 불러 세운다.

"할머니, 이 꽃으로 꽃차 만든 거예요?" 한다.

며칠 전 할미가 수필교실에서 얻어간 ‘금계국’ 꽃차 마시던 것을 예사로 보지 않았나 보다. 놀이터 화단에서 만난 노란 꽃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찻잔에 떠 있던 노란 꽃송이를 생각해 내는 손녀딸이 내게는 감성 아이콘이다.

어김없이 할미의 투박한 손은 손녀의 엉덩이에 토닥토닥 기쁨과 사랑이 표현 되었다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얼굴을 들여다본다.

두 볼은 솜털 보송보송한 복숭아요, 코는 곧 피어날 꽃잎이요, 긴 속 눈썹은 그대로 인형의 모습이다. 발가락은 흰 콩깍지에서 갓 얼굴을 내민 콩알 같아 슬며시 깨물어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 라고 누가 내 마음을 그리도 표현을 잘 해 주었나.

오늘도 어린 천사는 포근포근한 몸을 내게 던지며 "할머니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아양이 만발이다. “나도, 이 세상에서" 우리 손녀딸이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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