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에 있는 탁상달력이 눈에 들어온다. 동그라미가 그려진 것을 보니 며칠 있으면 남편 생일이다. 평일이라 두 딸아이는 집에 오기 힘들 것이다.

작은딸마저 대학생이 되면서 독립을 했다. 말수가 없는 아이지만 그래도 집에 없으니 썰렁하다.

마트에 들려 필요한 음식 재료들을 샀다. 서너 가지 밑반찬을 만들고 내일 아침에 할 것은 따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새벽 네 시, 미역국을 먼저 끓이고 남편이 좋아하는 호박전, 동그랑땡, 소세지전과 불고기 등 이것저것 차리다보니 한상 가득이다.

작은아이가 기프티콘으로 보내온 케이크와 함께 생일상을 휴대폰카메라로 찍어 두 딸아이 휴대폰으로 보냈다. 떨어져 있지만 아빠의 생일을 함께 축하하자는 뜻이다.

나름 푸짐한 생일상 앞에 남편과 둘이 마주 앉았다. 남편은 고맙다며 맛있게 먹는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흐뭇하면서도 짠하다.

남편 생일상을 차리기 시작한지가 언제부터인가 생각에 잠겨본다. 결혼하고 나서부터 남편의 생일상은 따로 차리지 못했다.

바로 이틀 후에 친정엄마생신이기 때문에 엄마와 한상에서 케이크를 하나 더 놓고 사위 생일도 같이 하자고 하셨기 때문이다. 남편은 형제가 없는 썰렁한 시댁보다는 오남매가 북적이는 처가에서 받는 생일상이 더 좋다고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는 남편 생일상을 따로 차리기 시작했다. 친정집에서 엄마와 함께 한 생일상에 비하면 지금은 조촐하고 썰렁하기만 하다.

두 딸아이마저도 학교 다니느라 나가 있으니 더 그러하다. 문득 엄마 생각에 서글픔이 밀려온다.  며칠 뒤, 큰딸아이가 아빠의 생일선물을 사들고 집에 왔다.

두 아이들이 아르바이트 비를 모아 샀다고 한다. 얇은 봄 점퍼와 티셔츠였다. “이쁜 것으로 잘 샀네!” 했더니 “내가 옷은 잘 고르지”하며 우쭐댄다. 남편은 아이들이 사온 옷을 입고서는 싱글벙글이다.
“점퍼와 티셔츠 중 하나만 사지, 돈도 없을 텐데” 했더니 “너무 하는 것 아냐? 엄마 생일선물은 비싼 거 받아놓고” 하며 큰 딸아이가 한마디 한다.

내 생일은 12월이라 모직코트를 선물 받았었다. 가격이 조금 높은 거였다. 엄마 선물과 금액을 맞추느라 두벌을 샀다고 한다. 역시 자식은 있고 볼 일이다.

두 딸아이가 우리 곁에 있어 행복하고 감사하다. 주로 받기만 했던 두 딸아이가 이제는 남편과 나를 챙기는 것을 보면서 어느새 저리 컸나 싶다. 생일 선물 하나에 효도를 다 받은 느낌이다.

우리 부모님도 이런 마음이셨을까? 생신 때마다 옷 선물을 사 드린 기억이 난다. 엄마는 밝고 화려한 걸 좋아하셨다. 그런 엄마의 취향은 아랑곳 하지 않고 나는 고상하고 점잖아 보이는 색으로만 골라 선물을 했다.

그럴 때마다 색이 너무 칙칙하다며 불평을 하면서도 맏딸이 사준 거라며 입고 나가서는 주위에 자랑을 하시곤 했다. 돌아가신 지금에서 생각하니 살아생전에 좋아하는 색과 취향으로 사드릴 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

거리를 지나다가 빨간색 옷이 걸려 있는 것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들어가서 한번 걸쳐보지만 너무 튄다는 생각에 이내 벗어 놓는다. 아직까지 나는 무난한 것이 좋다.

두 딸들은 엄마, 아빠 취향을 잘 알고 선물을 한다. 어떤 걸 사드리면 좋아하실까 부모를 먼저 생각하는 딸의 마음이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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