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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작가의…천삼백원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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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25  14: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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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읍내에 나갈 일이 있는데, 남편은 친구 모임이 있어 서울에 가야 한단다. 할 수 없이 난 12시 50분에 우리 마을 앞을 지나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정류장까지는 팔백 미터 거리니 5분 정도 걸릴 거라 생각하고 여유 있게 40분에 집을 나섰다.

평소에는 차로 휘~익 달려 나가는 둑길을 모처럼 느긋하게 졸졸졸 낮게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겨울인데도 얼굴에 닿는 바람결이 차갑지 않고 햇살은 눈부시게 반짝인다.

말라버린 억새의 억센 줄기가 서걱거리며 제 몸들을 부딪치고, 숲 풀 속에 깃들어 있던 이름 모를 새들이 제풀에 푸드득거리며 날아간다.

산 까치 서너 마리가 길가에서 종종거리다가 발자국 소리에 하늘로 낮게 날아오른다.

인적이 없는 고요한 길을 산책하듯 음미하며 걷다 보니 차를 타고 달릴 때는 느낄 수 없는 청량감에 새삼 충만한 기쁨이 넘실거린다.

눈앞에 보이는 산이나 들은 언제 그렇게 푸른 청춘으로 바빴었는지 모른다는 듯 시치미를 뗀다.

푸르렀던 지난날의 활기찬 하루를 마감한 지금, 이제는 잠시 쉬면서 돌아오는 새 봄을 준비하려는 마음으로 산의 나무도 텅 빈 들녘도 메마른 갈색 몸을 뒤채며 잠을 청하는데, 그 잠깐 동안의 휴식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밭고랑 사이사이 새파랗게 풀들이 자라고 있다.

어느새 정류장 앞이다. 때맞추어 버스가 도착하고 나는 버스에 올라 교통카드를 찍는다. 카드라 그런지 백 원이 할인된 ‘1200’이라는 숫자와 함께 ‘감사 합니다’ 하는 요란한 기계음이 들린다.

낯선 얼굴 두어 사람이 나를 바라본다. 나는 왠지 무안하여 목례하듯 반사적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 눈에 띄는 자리에 바로 앉는다. 버스가 출발한다.

좌석이 높아서인지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새롭다. 일주일이면 서너 차례씩 읍내에 나가지만 운전하면서 빠르게 스쳐 지나갈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주변 풍경을 하나하나 눈에 익히며 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꼭 고향에 온 것만 같다.

면사무소 앞 정류장에서 어르신 두 분이 타시니 뒤에 앉아 있던 분이 “ 어이구 어쩐 일이유, 장에 가유?” 큰 소리로 묻는다. 이어 들려오는 떠들썩하면서도 흥겨운 목소리들로 버스 안은 갑자기 활기를 띈다.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행복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듯 나도 모르게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번진다. 참으로 정겨운 모습들이다.

상큼한 허브향이나 커피의 그윽한 맛이 아닌, 잘 익은 된장처럼 친숙하고 구수한 냄새를 지닌 사람들 속에서 너무나도 인간적인 삶의 진수를 느꼈다고나 할까?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다 알 정도로 친밀한 관계 속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니 이런 버스 속 진풍경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굽이굽이 휘도는 백곡호 너머로 높고 낮은 산들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잔물결조차 일지 않는 수면이 검푸르게 빛난다. 아름다운 이 길을 지날 때마다 참으로 행복했었다.

그리고 버스에 내 몸을 맡긴 채 바라보는 오늘, 백곡호는 또 다른 매력으로 나를 감탄하게 한다.

조그마한 잡티 하나도 들어올 수 없는 무념무상의 경지를 선물해주는 백곡호! 이어서 나타나는 종 박물관. 청정한 자연 속에서 맑고 투명한 종소리가 하늘 높이 울려 퍼지는 것 같다.

가끔 승객 하나 없이 텅 빈 채로 오가는 버스를 만날 때면 왠지 서글펐다. 낭비가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버스가 정기적으로 운행되는 덕에 운전을 못하는 어르신들이 그나마 병원이나 장에 가시고 볼 일도 보실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버스가 한없이 고맙게 여겨진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버스에 부착된 하차 벨을 누른다. 가볍게 몸을 일으켜 문 앞에 선다. 버스 문이 열린다. 날렵하게 내리는 내 뒤로 문이 닫힌다. 1300원의 행복을 만끽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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