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찾아 나서고 싶은 날이다. 혼자 떠나기 썰렁하여 번개 치듯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나들이를 함께 갈 수 있다는 답이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금방 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고맙고 행복하다. 세 여인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무작정 차에 올랐다.

오창을 지나면서 정해진 목적지는 문의문화재단지다. 오늘 같은 날은 목적지가 중요치 않다. 여우같은 봄바람과 물오른 나뭇가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롭고 설렌다.

대청호를 끼고 문의를 찾아가는 마음은 자동차 속도보다 더 빨리 달려간다.

문의문화재단지를 다시 찾게 된 건 오랜만이다. 몇 해 전, ‘충북인 문학인 대회’가 그곳에서 열렸다. 그 당시에는 밤길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둘러보질 못하고 행사만 참석하고 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양성문’으로 들어선다. 언덕 위에 올라서서 대청호를 바라보니 쌉쌀한 맛이 담긴 바람이 봄을 시샘하듯 살갗을 파고든다. 완연한 봄이 아니라며 새침 떠는 바람을 피해 대장간으로 들어섰다.

고유의 전통문화를 재현하고자 조성한 대장간은 변함없이 정겹고 인기가 좋다. 현재에도 쓰임새가 많은 농기구를 직접 만드는 대장장이의 손길이 분주하다.

대장간을 찾은 한 무리의 관광객들도 옛 정취를 생각하며 연장을 산다. V자형의 호미가 궁금하여 물어보니 잡풀을 뽑는 기구라 했다. 마당에 풀 뽑을 때 필요 할 것 같아 사 들고 오솔길을 따라 오른다.

‘낭성 관정리 민가’ 앞을 지나려니 마을 어르신들이 구경하고 가라며 부르신다. 들여다보니 짚으로 새끼를 꼬아 동구미와 바구니 등을 손수 만들어 판매를 하고 계셨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어린 시절 겨울 저녁이면 윗방에 앉아 할머니와 엄마는 늘 새끼를 꼬았었다. ‘스락스락’ 거친 손바닥에서 찌푸리기를 비벼 꼬던 새끼 꼬기의 소리가 잠결에 들려오듯 두 분의 모습이 그립다.

대청호미술관을 돌아 나오는 오솔길에 조각 작품 앞에 발길이 머문다. “미세의 정원에 들어가서야 시인은 꽃의 배아를 알게 되는 법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구절에 눈이 또렷해졌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나선 길에서 진심의 씨앗이 보인다.

향기로 가득한 꽃으로만 살고 싶은 허영이 컸기에 단순한 것이 평화라는 것을 잊고 지냈다. 평범함이 행복이며 작고 소소한 꽃일수록 보이지 않은 씨앗이 단단하고, 그 뿌리 또한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평온해진 어깨에 햇살이 앉는다. 따스한 마음으로 돌아 나오는 길에 ‘야 신난다’라는 제목의 자전거 타는 조각과 ‘꿈 마중’의 가족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소한 삶, 그 속의 가족이 곧 꽃임을 느낀다.

짧은 나들이에서 철이 든 것 같다. 오는 내내 수다를 떠는 세 여인의 입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종종 소녀 같은 마음으로 가까이 있는 것들의 귀함을 찾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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