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문턱에 들어섰는가 했더니, 벌써 벚꽃과 목련은 잎을 내밀고 진달래와 꽃잔디가 흐드러지게 피어 나를 유혹하고 있다.

어깨가 늘 아파 병원을 찾았다가 수술을 했다. 오른쪽 손을 못 쓰니 모든 게 불편했다. 그 가운데도 “문학관 탐방” 숙제가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해야 한다는 마음에 어디로 갈까 하다 가까운 충주 문학관으로 결정했다.

오른손 때문에 운전을 할 수가 없어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일요일에 같이 가자고 한다. 날아갈 것 같은 마음으로 채비를 했다.

40여분을 달려 충주에 있는 문학관에 도착해서 보니 시립도서관과 같이 한 마당을 쓰고 있다. 전에는 사범학교 자리였다고 한다. 넓은 뜰과 잔디, 강준희 문학비가 마당을 꽉 채운 느낌이 든다.

1층 문학관으로 들어가 보니, 전시된 작가 및 작품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유품까지도 진열해 놓은 것이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던 중 유독 발길을 잡는 게 있었다.

유재형, 충북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출생. ‘우리 고장에도 이런 작가가 있었구나’ 하며 그의 약력을 읽어보며 다시 한 번 자부심이 생긴다.

많은 작가의 약력과 작품을 둘러보고, 탄금대로 향했다. 탄금대에 들어서니 주현미가 부른 “탄금대 사연” 노래비가 나를 반긴다.

그 옆에는 북의 여진족을 물리친 조선 최고의 명장 신립장군 위령탑이 우뚝 서 있다. 남편은 그런 훌륭한 장군이 임진왜란 시 왜 이곳에서 배수진을 치고 싸웠는지 답답하다고 했다.

당시 누가 뭐래도 적군은 문경세제에서 막아야 했던 것을….

또한 탄금대는 신라 진흥왕 때 우륵 선생이 가야금을 타던 곳으로 유명한 곳이 아니던가. 야외 음악당에서 우륵 선생의 가야금 타는 모습을 그리 보며 조금 걷다보니 동천 권태웅 작가의 “감자꽃” 노래비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낯익은 시로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시인은 충주시 칠금동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에 재학 중 항일운동을 하다 투옥되었다가 1951년 3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셨다. 그의 부모님께서는 얼마나 애통해 하셨을까 자식이 있는 나로서는 너무 애절한 마음이 든다.

탄금대에서 남한강을 내려다보는 여유도 참으로 싱그럽다.

거북이 등 같은 노송에도 새순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굽이돌아 흐르는 남한강물도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유유히 흐른다.

온갖 자태를 뽐내며 꽃향기를 자랑하는 4월 우리 부부는 문학관 탐방 숙제로 인하여 즐거운 데이트를 즐기며 문학의 향기를 온 몸으로 휘감고 돌아왔다.

저작권자 © 매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