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지방우정청 괴산우체국장 홍석원

 
◆충청지방우정청 괴산우체국장 홍석원

불가(佛家)에서는 길가다 옷깃만 스치더라도 전생의 큰 인연이라고 하였듯이 우리는 매일같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곤 하는데 사람의 만남이란 모두가 소중한 인연이다.

수없이 많은 만남 중에는 길을 오가다 스치며 만나는 순간적 만남도 있지만 부부의 연(緣)과 같은 중요하고 긴 운명적 만남도 있으며 이별에도 잠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짧은 이별에서부터 생과 사를 달리하는 사별(死別)과 같은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긴 이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우리들 삶이고 인생이다.

얼마 전 우리 아파트에서 지킴이로 수년 동안 웃음과 사랑으로 열심히 봉사하시던 분이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파트 정문을 드나들 때면 환한 얼굴로 배웅해주고 맞이해주어 주민들의 아침 출근길을 밝게 해주었고 저녁 시간 집에 들어올 때면 든든함과 보금자리의 아늑함을 더해 주었기에 못내 아쉽다.

그 동안 정들었던 그 분이 떠나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생전(生前)에 만남과 인연을 중요시 하라시던 선친(先親)과의 영원한 이별이 된 마지막 임종(臨終)의 순간이 그립고 새로워 되짚어 본다.

2007년 꽃피는 봄 어느 날 온 가족이 모여 못자리 작업을 하는데 선친께서는 그 날도 밖에 나오셔서 자손들 일하는 모습을 얼마동안 흐뭇하게 보면서 참견을 하시다가 힘에 겨운지 집으로 들어가시며 손자 하나를 데리고 가신다.

집으로 가시면서 너 말고도 일할 사람 많으니 너는 내 옆에서 할아버지 배를 문질러 달라며 평소 안하던 행동을 하시어 몸이 많이 불편한 듯 하여 걱정이 되었다.

오후에 일을 다 마치고 나서 당신의 건강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아 청주로 함께 나가시자고 하니 안 나간다고 하시며 다 나가고 하나만 남으라고 하신다.

전 같으면 괜찮다고 다 나가라고 하였을 텐데 누군가 남으라고 하는 건 뭔가 당신이 짐작하고 계셨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자 큰 형님이 남는다고 하기에 그 날은 토요일이고 큰 형님은 평소에도 아버지를 모셨기에 다음날이 일요일이라 출근을 안 해도 되니 여섯째인 필자가 남기로 하였다.

다 나가고 둘만이 남게 되자 당신 때문에 아들 하나가 해지는 저녁놀을 바라보며 외로이 앉아 있는 모습이 안 되어 보이셨는지 어디에 가면 뭔가 볼거리가 있다고 다녀오라고 하신다.

밤에 주무시면서 속이 불편한 듯 화장실을 몇 번 다니다 누우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잘 주무시나 눈을 떴는데 당신도 눈을 떠 서로 마주치자 머쓱해하시며 ‘어여 자’ 라고 말씀하신다.

밤중에 잠에서 깨어 누운 채로 도란도란 옛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내일 아침에 병원에 가시자고 하니까 ‘일요일인데 진료 해줄까’ 하시기에 다니던 데로 가면 가능할거라고 말씀드리니 ‘그럼 갈 때 목욕하고 가야된다’고 하신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목욕을 시키어 방에 모시고 밤에 버린 옷을 빨아 놓고 병원 갈 준비를 하는데 전화벨이 울리자 당신이 직접 받아 큰 아들과 무언가 주고받으며 이별을 나눈다.

병원에 갈 옷가지 등을 챙기다말고 인기척이 없이 조용하여 뒤를 돌아보니 갑자기 눈을 치켜뜨고 입에 힘을 주고 계시어 아차 하며 ‘아버지!’하고 크게 부르니 처음에는 ‘응...’ 하시더니만 곧바로 아들의 울부짖음을 뒤로한 채 이승과의 마지막 이별을 하셨다.

선친은 87세의 일기로 가시기 전날 밤을 지새우며 살아온 옛 이야기를 아들에게 유언처럼 들려주시고 임종 2시간 전 목욕하고 30분 전에 큰아들로부터 전화로 하직 인사 받고서 미원천 벚꽃이 만발한 화창한 봄날 구름처럼 가셨다.

인생은 회자정리(會者定離)란 말이 있듯이 모든 만남은 짧은 만남에서 긴 이별까지 모두 반드시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攝理)요 숙명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은 모두가 소중하고 큰 인연인데 상호관계를 서로가 좋은 만남으로 이어나가야 인생이 즐겁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몇 해 동안 아파트 지킴이로 짧은 만남을 맺었다 떠나가신 분께 많은 축복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면서 긴 이별이 아닌 짧은 이별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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