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5집 '아이 러브(I love)' 타이틀곡 '누드(Nxde)'

다양한 해석 이끌어내며 상업적으로도 성공

(여자)아이들 2022.10.19. (사진= 큐브 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여자)아이들 2022.10.19. (사진= 큐브 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말투는 멍청한 듯 몸매는 섹시 섹시요 / 그럼 다이아 박힌 티아라 하나에 / 내가 퍽이나 웃게 퍽이나 웃게 / 뒤틀려버린 로렐라이 Don't need no man / 철학에 미친 독서광 Self-made woman"

그룹 '(여자)아이들'((G)I-DLE)의 다섯 번째 미니 앨범 '아이 러브(I love)' 타이틀곡 '누드(Nxde)'는 '섹스 심벌 (sex symbol)'로 소비되는 미국 배우 매릴린 먼로(1926~1962)를 향한 헌사이자, 그녀의 이미지를 K팝 식으로 변주한 것이다. '로렐라이'는 먼로가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1953)에서 맡았던 백치미 넘치는 발랄한 쇼걸 이름이다.

(여자)리더 전소연이 작사·작곡한 '누드'가 짚은 것처럼 '진짜' 먼로는 '몸매 좋은 멍청한 금발 미녀'가 아니었다. 영화 '7년 만의 외출'(1955) 중 지하철 환풍구 바람에 치마를 날리는 그녀의 모습처럼 자극적인 이미지로 부풀려진 거다.

먼로가 아닌 노마 진 모텐슨(본명)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다룬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를 갖고 다닐 정도로 좋아하며 읽었고, 혁신성으로 미국 민주주의를 대변한 시인 월트 휘트먼의 시집을 애독했으며, '자치를 위한 투쟁'을 쓴 미국 언론인 겸 작가 링컨 스테펀스를 좋아했다. 극작가 아서 밀러와 결혼했었고, 존 F 케네디와 염문설을 뿌렸을 만큼 식자층(識者層)과도 통했던 그녀다.

(여자)아이들은 먼로를 주요 모티브로 삼은 '누드'에서 "다른 누군가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 그냥 '나'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해야 마땅한다"고 노래한다. 자칫 외설적인 단어로 들릴 수 있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누드라는 기표는 일종의 맥거핀인 셈이다. 이 단어를 듣고 선정적이라고 생각한 이들은 "변태는 너야"라는 '누드'의 막바지 노랫말에 저격당한다. 

뮤직비디오엔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통했으나, 함부로 재단되고 이미지으로 소비된 다양한 여성 또는 캐릭터의 이미지가 나온다. 먼로와 마돈나 같은 스타들, 성적인 면이 부각된 '물랑루즈'의 화려한 이미지들, 타이트한 빨간 드레스 이미지로 기억되는 실사가 결합된 애니메이션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1988)의 제시카 래빗 등이다.

(여자)아이들 '누드' 뮤직비디오 물랑루즈 패러디 장면. 2022.10.26. (사진 = 유튜브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여자)아이들 '누드' 뮤직비디오 물랑루즈 패러디 장면. 2022.10.26. (사진 = 유튜브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특히 비제 오페라 '카르멘'의 아리아 '하바네라' 멜로디를 일부 차용한 건 일종의 전복이자 도발이다. "사랑은 길들지 않은 새"라고 노래하는 이 곡은 1875년 발표 당시 순종적으로 그려지던 여성의 이미지를 깨고 주체성을 그려내 충격을 안겼다.

일부에선 금발 머리에 란제리 룩·가터벨트를 이번 의상 주요 콘셉트로 내세운 (여자)아이들의 행보가 여성의 성적대상화를 상업적으로 재차용한 거 아니냐는 비판 어린 시선도 보낸다. 하지만 이미지적으로 소비되는 아이돌인 당사자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의상을 입었다는 자체는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누드'(NUde)의 스펠링에서 유(U)를 엑스(X)로 변경한 곡 제목 역시 이러한 맥락 위에 있다.

특히 영국의 '얼굴 없는 화가'로 유명한 뱅크시(Banksy)가 지난 2018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자신의 회화 '풍선과 소녀'가 낙찰되자마자 파쇄하는 장면을 오마주한, 많은 이들이 지켜보던 누드 그림이 파쇄되는 장면이 그걸 상징한다.

박희아 대중음악 평론가도 "처음 티저가 공개됐을 때만 해도 "왜 굳이 '누드'라는 콘셉트를 정한 거냐"며 부정적인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완곡이 공개되자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다. '톰보이' 때보다 더 전복적으로 여성의 몸과 젠더에 대한 고정관념을 지적하고 있는 곡이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여자)아이들 '누드' 뮤직비디오 제시카 래빗 패러디 장면. 2022.10.26. (사진 = 유튜브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여자)아이들 '누드' 뮤직비디오 제시카 래빗 패러디 장면. 2022.10.26. (사진 = 유튜브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면서 "여성 아이돌의 얼굴에 나체를 합성하는 등 불법적인 행동이 온라인상에서 흔하게 눈에 띈다. 또한 기획사들은 여성 아이돌의 가슴이나 다리를 강조하는 안무로 은연중에 관음적 시선을 소비자가 누릴 권리처럼 제시한다. 이런 관행에 대해 (여자)아이들은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고도 해석했다.

다만 "한편으로는 (여자)아이들의 퍼포먼스를 '주체적 섹시'라고 말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남긴다"면서 "페미니즘적으로는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고, (여자)아이들이 이런 생각을 끌어낸 것 자체는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음원차트를 휩쓴 전작 '톰보이' 뮤직비디오에서 전 남친에게 복수하는 은유적인 이야기를 액자 형식으로 보여 준 (여자)아이들은 이번에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상징적인 아이콘들을 가져와 여성의 주체성을 톺아보는데 주력한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공격당하는 여성 아이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자신들을 세상에 맞춰 포장하기보다, 상업적인 테두리 안에서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준다는 자체로 의미가 있다. (여자)아이들은 전소연뿐만 아니라 중국 출신 우기, 태국 출신 민니 등 다른 멤버들도 곡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팀명 중 '아이들'은 개인을 뜻하는 영어 '아이(I)'와 복수를 뜻하는 '들'의 합성어다. 앞서 언급한 멤버 세 명 외에 한국인 멤버 미연, 타이완 출신 슈화 등 외국인 멤버가 절반이 넘는 코즈모폴리턴적인 그룹 성향도 '나' 안에 '우리'가 들어가 있다는 걸 보여주며 다양한 시선을 견지한다.

(여자)아이들 '누드' 뮤직비디오 뱅크시 패러디 장면. 2022.10.26. (사진 = 유튜브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여자)아이들 '누드' 뮤직비디오 뱅크시 패러디 장면. 2022.10.26. (사진 = 유튜브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무엇보다 (여자)아이들은 이번 '누드'로 자신들만의 '괄호치기 미학'이 절정에 올랐음을 증명하고 있다. '소괄호'(())는 보통 이럴 상황에서 사용한다. 생략하는 요소임을 나타내거나 부기(附記·원문에 덧붙여 적는 기록)일 때. 특정 대상에 대한 괄호치기를 더하는 일은, 괄호친 것은 제쳐두고 능동적으로 그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겠다는 뜻이다.

이 팀의 이름은 '여자아이들'이 아닌 그냥 '아이들'로 읽어야 한다. '(여자)'는 묵음이다. 걸그룹이 아닌 그냥 한 팀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4년을 달려왔고 그것을 검증해나가고 있다. 이번엔 괄호 안에 묶여 있던 여자를 스스로 끄집어내 K팝 아이돌 판에 올려놓고, 또 다른 시험에 나섰다. 특히 최근 먼로를 다룬 넷플릭스 영화 '블론드'가 그녀를 선정적으로 전시하는 데 그쳐 비판을 받은 것과 달리 좀 더 성찰할 부분을 끄집어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번 (여자)아이들은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 이 곡은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멜론을 비롯 플로(FLO) 등 주요 음원차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조혜림 플로 콘텐츠 기획 매니저(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는 "젊은 여성을 일컫는 '아가씨'란 단어의 본래 아름다움을 돌려주고자 박찬욱 감독은 '아가씨'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여자) 아이들의 리더 전소연은 여자 아이돌과 어린 소녀들을 향한 관음적 시선을 차단하며 '여자', '아이들', '누드'가 주는 선정적인 키워드를 자신들의 노래로 변화시켰다"고 읽었다.

그러면서 "근래 여자 아이돌들은 연약하길 거부하고, 자신을 사랑하며, 세상을 지키고자 노래한다. (여자) 아이들의 '누드'는 이러한 흐름의 기폭제가 돼 타인들의 관음적 시선으로부터 탈피, 당당하게 불복종하고 두려움 없이 '너는 변태'라는 말을 내뱉는다. '누드'란 단어가 주는 선정성의 무례함을 딛고 '진짜 나를 다 보여주는 것 = 누드'라는 새로운 의미의 확립을 이끌어 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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