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거리는 8월의 한낮 태양이 정수리에 내리쬔다. 길가의 가로수 잎들도 힘에 겨운 모습으로 늘어져 있다.
승용차 한 대 겨우 지나가기도 빠듯한 과수원 길이 나타난다. 길을 따라가다 보니 양 옆으로 복숭아가 제 맛을 들이느라 뜨거운 태양을 빨아들이고 있다.

조금만 더워도 손차양으로 햇볕을 가리며, 뜨겁다고 원망했던 햇살이 저 복숭아들에게는 과육을 익히는 생명줄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연의 이치와 순리는 그냥 막무가내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조금 불편하거나 나와 잘 맞지 않으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던 마음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한참을 달려가니 나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는 하얀 조립식 건물이 나타났다. 불편한 어르신들을 모시고 있는 요양시설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삼십 여명의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계신 분과 또 한쪽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초점 없는 시선을 보내는 분도 있다.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그들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음 느껴져 마음이 아려온다.

어떠한 사연이 있어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한때 어떠한 삶을 살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비슷비슷한 형색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고 분들이다. 젊었던 시절의 도전과 패기는 이미 전설이 되어버렸고 속빈 강정처럼 노쇠한 몸만 남아 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때문인지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진다.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이리 저리 둘러보다 보니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가 눈에 띄었다. 이곳 시설과는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신선한 모습이다. 우리 말고도 방문자가 또 있었다는 것이 반갑기도 하고 관심이 갔다.
어르신과 마주보고 앉아 있는 사람은 금방 만화 속에서 튀어 나온 테리우스처럼 수려한 외모의 젊은이였다. 그의 눈엔 정이 뚝뚝 묻어난다. 말소리는 낮게 속삭였다.

주로 건강을 여쭙거나 고향을 기억 하도록 대화를 이끌어 내고 있었다. 어르신들의 표정이 환하게 변하며 대화의 장으로 따라 나온다.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어리광을 하기도 한다. 마법이라도 부린 듯 어르신들을 순화시키고 있는 젊은이에게 나도 빠져들고 있는데 그 옆에 또 다른 광경이 나를 사로잡는다.

초등학교 3학년쯤 돼 보이는 사내아이가 정신 줄까지 놓아 버린 듯한 어르신의 손을 정성스럽게 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고사리 같은 손과 수많은 세월의 흔적이 역역한 손이 하나가 된 모양이 묘한 감동을 일으켰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은 어르신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마침 석양이 너울너울 넘어가는 때였다. 그들이 석양을 품에 안고 문을 나서는데 어르신들을 떠나기 아쉬운지 그림자는 길게 안으로 들어와 서성이고 있다. 아니, 내 마음이 그들의 아름다운 마음에 잡혀 서성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앙증맞은 손으로 어르신의 손을 마사지 하던 아이가 문을 나서며 “아빠” 하고 잡은 손은 테리우스 같이 수려한 그 젊은이였다. 아하, 부자간이었구나.

요즘 젊은이들은 대부분 예의 없고 이기적이라고 한다. 이러한 세태에 저 젊은 부자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인가. 바른 인성을 몸으로 가르치고 있는 아빠와 그의 손을 잡고 떠나가는 아이의 앞날에 축복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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