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라는 말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일본인들이 청구서, 벽보 등을 뜻하는 영어단어 ‘Bill’을 ‘비라’라고 잘못 발음한 것이 우리나라에 전해졌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어린 시절 길을 가다가 삐라를 발견하면 가지고 있으면 안 되었고 경찰에 신고하면 학용품을 줬는데 이 때문에 아이들에게 삐라 발견은 신고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함께 신나는 대박이었다.

삐라는 전쟁 중에 단순히 선동을 목적으로 쓰였지만 전쟁 후 이념이 갈라지면서 남북한은 적극적인 심리전을 전개하는 등 정치적 목적을 담은 전단지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한국전쟁(6ㆍ25전쟁) 당시 북한의 삐라는 국군보다는 주로 유엔군을 대상으로 살포하였는데 남한의 주요 전력이 유엔군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당신이 왜 남의 나라에 와서 목숨을 버려야 하는가?’, ‘유엔군 병사들이 고생하는 동안 권력층은 호의호식 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국군을 대상으로는 ‘싸워야 할 적은 인민군이 아니라 외세다’라는 내용이었다.

한국전쟁 초기에는 북한군보다는 유엔군이 삐라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특히 철로 등 북한 주요시설물을 폭격하기 전 경고성 전단을 뿌려 북한군에 협조하거나 대피하지 않으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내용뿐만 아니라, 북한체제의 모순을 보여주는 내용과 투항하면 안전을 보장한다는 증명서 등을 포함하고 있다.

1980년~90년대에 들어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에 비해 월등하게 앞서면서 이를 과시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1984년 LA올림픽에서의 선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1983년 이웅평 공군장교의 월남한 내용, 휴전선을 넘는 구체적인 방법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시기에 북한에서는 경제력 차이가 점차 심해지면서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식의 내용이 먹히지 않자 남한 정부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주를 이루었다.

2000년대 와서 남한은 소책자와 함께 미화 1달러 지폐를 한 장씩 끼워 넣은 패키지를 풍선에 담아 날려 보내거나 DVD에 북한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상, 남북관계에 대한 우리나라의 뉴스 영상, 리비아 민주화 시위보도 등 북한주민들이 볼 수 없는 정보를 담아 보낸다.

북한에서는 남북의 국력차이가 너무 확연해 효과가 없자 삐라는 거의 살포하지 않지만 인터넷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투브 등을 통해 북한체제를 찬양하는 내용들이 있다.

얼마전 준전시 대치상황에서 남·북한이 협상력을 높이고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모든 전략을 총동원하여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갔으나 극적인 합의점을 찾은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이를 얼마나 잘 지키고 유지하며 화해와 협력의 길을 발전시켜 통일까지 이어지느냐가 문제다.

진실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답답하기만 하다.

이 답답함마저도 시원하게 해갈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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